power massge internet:www.imr.co.kr

고린도전서 서론

 

사도행전 18:1-17, 고전1:4-9

우리는 그동안 창세기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살펴보았습니다. 주의 교회에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많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부터는 고린도전서를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창세기를 통해 주의 교회에 많은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서 또 고린도전서를 통해서는 얼마나 많은 은혜를 주실 지 생각할 때 사뭇 기대가 큽니다. 오늘은 구체적으로 본문을 강론하기에 앞서 고린도전서에 대한 전반적인 서론을 공부하기로 합니다.

 

고린도전서라는 편지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주후 56-57년 사이에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여러 차례 편지를 썼습니다. ① 고전 5장 9절에서 자기가 고린도 교회에 전에 썼던 편지를 언급합니다. 이 편지를 보통 '이전 편지'라고 부릅니다. 그 편지에서 바울은 고린도 그리스도인들더러 교회안의 부도덕한 자들이나, 악한 자들,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이 이 경고를 세상의 이웃들과 일체 교류하지 말라는 것으로 오해하였습니다(고전 5:9-11). 이 편지가 고린도전서 이전의 편지인데, 이 편지는 완전히 상실되었습니다. ② 그후 바울은 '클로에의 집' 사람들부터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편지를 오해하고 있다는 소식(1.11)과 함께 고린도의 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고 아마 그리스도파 등으로 분열하고 있다는 소식(1:17)을 받았습니다. 또 ③ 그 무렵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대표단인 즉 스데바나, 보드나도, 아가이고 등(고전16:17)을 맞았고, 이 대표단으로부터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 즉 결혼(고전7:1-40), 우상에 제사된 고기(8:1-9:1), 예배 때의 혼란(11:2-34), 성령의 은사들(12:1-14:40), 부활(15:1-58),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16:1-4)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해답을 위해 편지를 썼는데 이 편지가 바로 우리의 고린도전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④ 바울은 주후 55년의 오순절 뒤 곧 고린도를 스스로 방문하려고 계획하면서, 우선 디모데에게 이 '고린도전서'를 쥐어서 보냈습니다(고전16장).

 

바울의 2차선교시 고린도교회 설립됨

그러면 바울이 언제 고린도에 가서 교회를 개척했습니까?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 주후 50-51년의 겨울에 고린도에 당도해서 약 1년 6개월을 머물면서 고린도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바울의 선교여행 중 이처럼 오래 머물면서 선교한 교회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가장 문제가 많은 교회가 고린도 교회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고린도에 와 있었습니다. 이들은 로마의 4대 황제인 claudius의 칙령에 의하여 주후 49년에 로마로부터 추방되어 고린도에 왔습니다. 주후 49년에 로마시에 유대인들이 살지 못하도록 칙령을 내린 것입니다. 이 부부는 천막 제조업을 하는데 이 일에 취직하여 일하면서 바울은 고린도의 유대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천막 공장에서 일하면서 자기 생계를 유지하면서 교회에 누를 끼치지 않고 선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 유대 회당에서 바울이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는데,  헬라 세계에 가면 유대 회당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장정 10가정 이상이면 회당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때 회당을 관리하면서 예배를 인도하는 회당장이 있었습니다. 안식일날 모여 예배할 때 회당장이 일어나서 그 안식일날 읽게 되어 있는 구약의 모세오경 한구절, 또는 선지서 한구절, 또는 시편 한구절을 읽었습니다. 매 안식일날마다 읽고 설교해야할 본문들을 다 정해 놓았습니다. 회당장이 그 안식일날 읽도록 되어 있는 구약의 어느 구절을 읽고 우리 중에 혹 이 말씀을 강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서 읽고 우리를 권면해 주시오 하고 초청을 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손님처럼 앉아 있다가 기회는 이때다 하고 나가서 뭐라고 말하느냐면, 오늘 읽은 구약성경 말씀이 나사렛 예수에 의해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예언한, 선지자가 예언한, 시편의 다윗이 예언한 이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예수에 의해서 성취되었다고 증거합니다.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야라고 증거합니다. 따라서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 유대인이 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신 메시야인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선언합니다. 이제는 유대인 이방인 차별이 없는 구원의 새로운 시대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새로운 선물을 받으십시오 하고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유대인들은 일리가 있다 생각하고 더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저자가 이단이구나 하고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나사렛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죽은 자를 부활하여서 만인의 구세주가 되었다고 그러는데 바울이 확실히 이단자라고 반발하며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유대 회당에는 이방인 중에 유대교에 매력을 느끼고 유대 회장 예배에 참여하면서 성경을 배우고 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사도행전에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행18:7). 거기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 중 하나가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회당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바울의 설교를 들었을 때에 아주 귀가 솔깃했습니다. 자기들은 유대 회당 예배에 매력을 느끼고 아무리 오래 참석해도 유대교로 귀화하지 않으면 구원을 약속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약이 완성되었다고 말합니다. 유대교로 귀화할 필요도 없이, 모세율법을 지킬 필요도 없이,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이 없이, 할례를 받았든지 안받았든지 다 죄가 용서받고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바울이 증거하는 이 복음의 소식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이방인들에게 야 정말 듣던 중에 반가운 소리였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바울이 증거하는 말이 진짜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반발하는데 우리집에 와서 좀더 이야기합시다. 그래서 바울을 데리고 디도 유스도가 자기집으로 갔습니다. 그 집이 유대 회당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을 데리고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여기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에서부터 고린도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동역자로 삼아서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18장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개척한 후에 바울이 에베소를 향하여 주후 52년 봄에 고린도를 떠났습니다.

 

역사 실증주의에 대한 평가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 점은 성경이 기록되게 된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태도입니다. 가령 고린도전서를 쓰게 된 배경이 당시의 고린도 교회의 역사적인 배경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바울이 고린도서를 쓸 때 당시의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 도시의 상황을 알아야 하고, 또 어떻게 고린도 교회가 그 당시의 사회의 영향을 받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교회안에서 생겨났는지를 알 때 더욱 고린도전서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당시의 배경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자들을 신학적으로는 역사실증주의자들이라 부릅니다. 이들의 말은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쓸 때 당시의 상황에 대한 답을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바울은 모세의 언어를 사용하여 당시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옛 언약의 완성으로 바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배경을 재구성해서 그것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해 들어오는 것은 거꾸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당시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당시 고린도 교회가 헬라적인 배경의 언어를 그대로 받아서 사용하지 않습니다. 당시 언어와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의미와 내용은 당시의 의미가 아니라 구약적인 의미를 담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구약의 언어를 사용하여 그것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완성되었는 지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가 처한 구원 역사적인 위치가 어떠한 지를 드러내어 이 말씀을 적용합니다. 그래서 고린도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믿음으로 바로 서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

고린도시는 항구도시로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입니다. 그래서 고대 고린도시는 부유한 도시였고, 우상 숭배가 심했던 도시였으며, 성도덕이 문란한 도시였습니다. 뿐만아니라 고린도에는 유명한 철학과 수사학의 학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식층의 자부심도 강한 도시였습니다. 고린도인처럼 말한다는 격언이 생겼는데, 그 의미는 아주 수사력이 말재주가 뛰어나다는 격언입니다. 여기 고린도에 상당히 큰 유대인들의 공동체가 있었어요.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고 떠난 후에 고린도 교회가 쉽게 세상과 동화되고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국제도시였던 고린도의 이방인적인 환경- 즉 성도덕의 문란함과 수사학의 발달-으로부터 고린도 교회가 많은 영향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문란한 성도덕, 우상숭배, 불신자들과 어울림, 분파주의, 지혜와 지식자랑, 열광주의 등등. 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입니다. 또한 고린도 교회는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로 분열되기도 했습니다. 성만찬석상에서 잘 사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였으며, 그래서 교회의 하나됨을 재확인하고 나타내야 하는 성만찬 예배가 분쟁의 장으로 되었습니다. 이처럼 고린도 교회는 당시의 고린도 도시의 타락한 모습과 같이하면서 교회 안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의 주제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가 바로 고린도전서입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고린도 교회는 참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성만찬식에 나타난 부자와 가난한 자의 문제, 교인들간의 세상의 법정에 소송하는 문제, 우상 제물에 대한 문제, 음행의 문제, 결혼에 대한 문제, 은사에 대한 문제, 부활에 대한 문제, 교회 내의 분쟁의 문제 등등 참으로 문제 많은 교회였습니다. 이 많은 문제에 한 항목 한 항목 답변하는 식으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 문제 많은 교회를 바울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권면하며 쓰고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린도전서는 각각의 독립된 주제별로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풀리게 되어있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인 주제를 말하자면, 특히 고린도전서의 서론은 1.1-9절입니다. 여기에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권면하고 있는 기초와 토대가 있습니다. 4-9절 말씀을 보면 바울은 이처럼 문제 많은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들이 이런 저런 문제로 심각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흠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더불어 우리와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이런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처럼 형편없는 교회를 권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이런 감사는 단지 형식적인 감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신실하셔서 우리와 교제하시는 하나님의 미쁘신 은혜가 이 일을 반드시 해결하여 고린도 교회를 치료할 수 있다는 소망 가운데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신실하심만이 이 일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그 장구한 역사 동안에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단 한 순간도 외면하신 적이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모세를 통해 주신 모세 율법안에서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많은 백성 중에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성소앞에서 부르는 찬양과 헌신의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전 지성소에서 이스라엘과 동행하며 생명의 사귐을 누리셨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신실한 교회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법에서 쉽게 떠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에 섰습니다. 옛 언약 시대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일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생명을 주시기에 충만하였습니다. 그러나 완성된 은혜의 시대와 비교할 때 구약은 아직도 많은 한계와 간격이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새롭게 창조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인격을 통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예수안에서 세워진 신약 교회는 구약과 같이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으로, 짐승의 반복되는 피뿌림으로, 반복되는 물로 씻음을 통해 세워지지 않습니다.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새 언약 교회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됨으로 참여하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우리의 첫 열매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안에서 부활의 생명을 누리는 교회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교회로 지음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은혜를 누리면서도 만일 깨어있지 못하면 많은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참으로 고린도 교회는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를 보는 것 같습니다. 쉽게 복음에서 떠나 세상적인 가치와 동화되었습니다. 형제를 섬기는 일에서 벗어나서 오히려 자신을 자랑하고 높였습니다. 복음의 원리로 전 인격을 무장하여서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켜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 것에 동화되었고 세상의 가치를 교회안으로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세상 것에만 온통 마음이 팔렸습니다.

왜 부활의 새 생명을 누려야 할 교회가 이런 지경에 처한 것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바르게 알지 못한 이유입니다. 복음의 원리대로 살지 못한 까닭입니다. 이 고린도 교회의 모습은 오고가는 모든 주의 교회에 많은 경종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비록 문제 많은 교회지만,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께서 다시 새롭게 하여 흠없는 하나님의 교회로 회복시킬 것이라는 강한 확신 가운데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교회가 서야할 새 시대의 삶의 원리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복음의 원리만이 새 언약의 교회가 살 수 있는 길임을 증거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서 지체를 섬기는 사랑만이 교회가 바르게 회복될 수 있는 길이요 생명의 길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의 주제입니다.

 

사랑하는 새백성 교회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주의 거룩한 교회로 부름받았습니다.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 주의 말씀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의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또 교회에 머물고는 있지만 그들의 삶을 보면 복음의 원리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복음만이 교회가 살 길입니다. 복음만이 여러분이 살 길입니다. 복음만이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길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복음의 원리에는 적당히 적당히 하는 적당주의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전 인격을 다해 복음에 매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헌신과 충성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지난 게으르고 불충성하고 계산적인 신앙의 모습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시시오. 그리고 주의 신실하심을 붙잡고 믿음으로 주앞에 드립시다. 복음을 떠나서 세상적인 가치를 받아들이고 타협하는 순간부터 교회에와 성도에게는 먹구름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고린도교회가 여러분에게 타산지석과 같은 역할을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무쪼록 고린도전서 말씀을 생각하면서 복음에 대한 바른 원리와 새 시대의 삶의 원리를 바로 터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성숙한 새 백성의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은혜목회정보